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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n South Korean press is interviewing him! Unfortunately there are no Korean speakers in the fan forums yet so the article remains untranslated, fully that is. If you could speak Korean and could translate, that would do everyone a huge favour. Anyway there are some snippets thanks to River of MashaPlus Info Forums, and I find them all interesting. Did you know Masha has never been interviewed by Korean Press? There are even more tidbits about Masha! All after the Read More link.
The original article in Korean is
here. But I notice it took a long time to load so I have copied and paste after Read More link, just in case you know Korean.
THE ARTICLE'S SNIPPETS IN ENGLISH
Thanks to River
I don't know if this interview is genuine or not (as in the reporter went there for press conference, or personal interview), but it looks genuine to me. Apparently it was done by the correspondence in Tokyo on 12th May at NHK waiting room in Shibuya. There are some info that I have not read before. Some of it:-
- This is how you spelled Masha's name in hangeul: 후쿠야마 마사하루 (Masaharu Fukuyama)
-Masha has never done interview with Korean's press before, so this is his first time. He also never been to Korea. But he can see the influence in Nagasaki, since his hometown is very to Korea's border. {Thanks to Mashamasha) the reporter also said as masha has refused many media interviews in japan, this time he accepted the interview from this korean newspaper must make Yomiuri and Asahi reporters very jealous. And the korean reporter guessed the reason why masha accepted their invitation maybe due to curiosity, as he has never been interviewed by korean media.
- It's more difficult to secure an interview with Fukuyama Masaharu than to secure interview with Japanese Prime Minister (as stated by another fellow reporter). In fact, he has refused interviews with reporters from Asahi and Yomiuri. He has also known to refuse invitations to attend Ryoma or taiga's related event. (Thanks to Mashamasha) the reporter said masha refuses to have media interview and public events because he wants to concentrate on drama shooting
- Masha likes
Kara (Korean girl group band). In fact, he likes Kara's booty dance. Reporter's note: His eyes shines with excitement. "“KARA is really cute. That… that… butt dance… I really like it (burst out laughing). I think it’s seriously a nice idea. I even thought of going to Korea just to see the butt dance.” (smile)" (
Source)
-It seems everyone wants to be Ryoma. But Masha doesn't want to be him due to one thing. He was assassinated at 33, in which Masha said: No, thank you.
- for the UFO story, masha said Perry and his kurofune came to Japan and asked them to trade with US, it's a huge shock to the japanese at that time, it's just like ET suddenly arrives on the earth with their UFO now and requests the earth to do business with them
- Popularity with women: In which Masha said women, if they know me, won't like me. But with Ryoma, yes, since the women want to baby him so much. He jokingly said the real Ryoma might not be amuse with all the comparison made with Masha. How dare you compare me to him!
- (Thanks to Mashamasha) masha said if ryoma is an entrepreneur, he will perform as well as yataro. But his/his enterprise's style will be different from yataro's. If yataro's enterprise is like Microsoft, ryoma's will be like Mac, because ryoma is more like Steve Jobs than Bill Gates (I hope not! Steve Jobs is famous for his temper when he was younger and he famously terrorised his workers, of course Apple is considered revolutionary but I myself am a big fan of Bill Gates - Funn)
The rest of it are about his similarities with Ryoma, looking out to the sea in Nagasaki. His first refusal in accepting this role and of course, his story on how he told Amuse he wants to make music, and their reply? Bring your music to us. And of course, reporter's background on Fukuyama Masaharu, something like how he's still on top even after 21 years in the industry, how he prepared for this role a year in advance and of course, how he does not know what will happen in the future if he accepts this role.
JAPAN'S REPORT ON THE SOUTH KOREAN PRESS' ARTICLE
Japan newspaper published the story of Masha's interview by the South Korean press, where the original Korean text is as below. You can view the Japanese text
here. I used google translator and the title is "Japan's Jang Donggun + Jung Woo Sung". I have no idea who is Jung Woo Sung but I do know who is Jang Donggung and years and years before when I was writing a review about
All About Eve, I did mention Jang Donggung looks like Masha! But Masha is the better looking one although also the thinner one. Well, now it seems I am not alone in this! By the way both actors are at least 3 years younger than he is.
Anyway...
Jang Donggun
+
Jung Woo Sung
=
Masha
??
THE ORIGINAL ARTICLE IN KOREAN Originally here. A rather long one, I suppose encompassing Masha's biodata, Ryoma's story, interview and more.
[j Story] 출구가 보이지 않는 일본, 영웅 료마의 부활을 염원한다
이번 주 j 는 일본으로 달려가 보았습니다. 열도의 료마 열풍이 심상치 않아서였습니다. 료마 기념 상품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서점엔 료마 관련 책이 깔려 있었습니다. NHK 드라마 ‘료마전’의 주인공인 톱스타 후쿠야마 마사하루는 ‘후쿠야마 료마(福山龍馬)’라고까지 불릴 정도입니다.
한국 언론에선 처음인 후쿠야마와의 인터뷰를 곁들여 ‘료마 열기’를 분석해 보았습니다. 일본 내 최고의 료마 전문가인 도몬 후유지 작가는 에 특별기고를 보내왔습니다. 인터뷰는 하지 않는다는 도몬 작가가 본지 특파원에게 던진 한마디가 머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료마가 되살아 온다면 혼란스러운 일본의 정국을 가장 먼저 수습할 것이다.” 그렇습니다.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와 정치자금 스캔들, 반 토막 난 정권 지지율로 일본 정치 리더십이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 못한 때문입니다.
1867년 암살당한 료마가 발판을 마련했던 메이지 유신으로 일본은 개혁과 근대화의 길에 접어듭니다. 반면 조선은 병인양요(1866년)·신미양요(1871년)를 거치며 흥선대원군의 쇄국과 정체, 쇠락이 이어집니다. 지도자 한 사람의 생각과 결단이 국가의 명운을 좌우한다는 걸 새삼 생각하게 됩니다. 사람으로부터 생각하고 배우는 신문. j의 지향점입니다.
최훈 중앙일보 j 에디터
열풍, 광풍, ‘공전(空前)의 붐’. ‘과장’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 일본인들은 이런 말들을 평소 자주 쓰지 않는다. 그런데 요즘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일본 NHK에서 방영 중인 사카모토 료마의 일대기 ‘료마전’에는 이런 수식어가 늘 따라다니니 말이다. 어딜 가나 ‘료마’ ‘료마’다.
이달 초 황금연휴에는 료마의 고향인 고치(高知)현과 그가 활약한 나가사키(長崎)현에 관광객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한마디로 대박이 났다. 하지만 료마전의 인기는 에도 막부 말기의 영웅 료마를 다뤘다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 핵심에는 NHK가 삼고초려를 거듭하며 료마 역으로 섭외한 일본 최고의 스타 후쿠야마 마사하루(福山雅治·41)가 있다. 일본 동료 기자들은 “총리보다 더 만나기 힘든 인물이 후쿠야마”라고 했다. 12일 오후 도쿄 시부야의 NHK홀 배우 대기실에서 j와 그의 인터뷰가 이뤄졌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사진= NHK 제공
일본 총리보다 만나기 어려운데
처음 뵙겠습니다 한국 언론과는 첫 인터뷰입니다
●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는 얼마 만인가요.
“그게, 처음이에요. 그동안 없었어요. 그러니까 이 자리가 저에게는 한국에 대해 ‘하지메마시테(처음 뵙겠습니다)’가 됩니다(그러곤 꾸벅 절을 했다).”
● 그럼 한국에 가본 적도 없나요.
“없어요. 늘 소속 사무실에 ‘맛있는 음식 먹으러 한국 데려가 주세요’라고 하는데 데려가 주질 않네요.(웃음) 제 고향이 (한국에서 가까운) 나가사키인데, 이제는 나가사키뿐 아니라 일본 어느 곳에 가든 한국의 다양한 문화가 들어와 있잖아요. 그런데도 아직 못 가봤으니. 정말 불러주시면 언제든지 갈 텐데. 환영해 주셔야 돼요.”
● 요즘 료마전이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는 뭐라고 보시나요(료마전의 현재 시청률은 대략 20~23% 내외. 일본에선 대략 15% 이상이면 ‘대박’으로 분류한다).
“역시 료마라는 인간에 대한 기대감이죠. ‘(료마가 있었다면) 뭔가 움츠러들어 있는 현 시대를 바꿔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리고 ‘출구가 보이지 않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현 상황을 타파하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료마라면 내주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게 하는 인간이죠. 그래서 많은 일본인이 료마라는 사람을 좋아하는 거고요.”
● 난세(亂世)의 진정한 리더십, 뭐 그런 것인가요.
“그렇죠. 어찌 보면 현재보다 막부 말기의 혼란은 더한 것이잖아요. 요즘이야 글로벌 시대고, 전 세계가 연결돼 커뮤니케이션이 충분히 되는 가운데 각자 어떻게 나아가는 게 옳은가 고민하는 것이죠. 그런데 막부 말기라고 하는 시대는 이런 비유가 적당할지 모르지만 갑자기 UFO가 나타나 ‘지구의 여러분, 우리와 비즈니스를 합시다. 만일 응하지 않으면 무력으로 전쟁을 일으키겠습니다’라고 말한 것과 다름없었던 거죠(당시 미국의 페리 제독이 ‘흑선(黑船)’이라 불린 함대를 이끌고 와 일본에 개항을 요구한 사건을 지칭한 얘기). 그러니 얼마나 경이롭고 혼란스러웠겠어요.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료마에게는 앞(미래)을 내다볼 수 있는 눈이 있었어요. 료마의 독특한 감성이기도 하죠.”
● 료마전의 제작감독은 후쿠야마를 일컬어 “선입관과 고정관념 없이 무엇이든 받아들이는 점이 료마와 닮았다”고 하던데요.
“료마야 큰 인물이고, 나야…(웃음) 료마의 매력은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인간적 면모에 있지요. 감히 료마와 날 비교한다는 게 건방진 일이지만, 어쨌든 나도 ‘내 방식은 이렇다. 그러니 저런 건 안 된다’거나 ‘내 방식대로 따라오는 사람만 같은 편이다. 그러니 날 따르라’는 사고방식은 싫고, 그런 사람도 난 싫어요. 개방적이고, 유연성 있게, 그리고 너무 티 내고 거부감 생기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자신의 이익이 되는 부분은 챙기는 료마식 사고가 좋습니다. 또 하나. 공통점이 있다고 하면 역시 모든 일에 흥미를 갖는다는 것이겠죠. 근데 더 중요한 것은 흥미를 가졌으면 생각만 하지 말고 그것에 바로 직접 부딪쳐 나가야 한다는 거죠. 그걸 하느냐 못하느냐의 차이가 인생을 바꿔놓는다는 걸 료마는 가르쳐주고 있죠.”
● 현대인은 료마에게서 뭘 배워야 할까요.
“료마의 삶을 보면 일단 두려워하거나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게 없어요. 즐거운 마음으로 ‘일단 해보자’며 밝게 사물에 접근하죠.”
●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군요.
“그래요. 제가 정치는 잘 모르지만 요즘 TV를 보고 있으면 리더라고 하는 정치인들이 너무나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어요. 그러니 (시청자들로부터) 불평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어요. 회사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일은 잘 할지 모르지만 늘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는 직원을 보면 ‘야, 얼굴 펴’라고 말하고 싶어지는 것이죠. 호감이 안 가요.”
이 대목에서 ‘료마가 현재 살아 있다면 뭘 했을 것 같나’란 질문을 던졌다. 개인적으로는 “혼란한 일본 정치를 구할 지도자라고 답하겠지”란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후쿠야마는 바로 “그야, 기업인이죠”라고 답했다.
“(료마의 친구인) 이와사키 야타로(岩崎彌太<90CE>)가 나중에 미쓰비시 그룹을 세웠잖아요. 근데 제가 볼 때는 료마도 그 못지않게 기업인 기질이 뛰어났어요. 하지만 료마는 그렇게 규모에 집착하는 기업인은 아니었을 거예요. 말하자면 료마는 윈도스(Windows·마이크로소프트의 운영체제)보다는 맥(Mac·애플사의 운영체제)이라고나 할까요. 빌 게이츠보다는 스티브 잡스 쪽이었다고 생각해요.” (웃음)
● 료마 같은 리더십이 요즘 일본에서는 잘 보이지 않아요. 진정한 리더의 자질은 뭐라고 보세요.
“‘아,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 ‘저 사람처럼 살아보고 싶다’라는 동경의 느낌이죠. 료마는 말 그대로 그런 느낌을 갖게 하는 인물이었어요. 요즘 일본에선 찾아보기 힘들지만요. 료마는 그런 점에서 알면 알수록 대단한 사람인 것 같아요. 단 딱 한 가지 제가 료마처럼 되고 싶지 않은 게 있어요.”
● 뭡니까.
“료마는 33세에 결국 암살당하잖아요. 아무리 동경하는 사람이라 하지만 (내가) 암살당하는 건 싫어요.”(웃음)
‘한국’으로 화제를 돌리자 그가 아는 한류 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한국분들이 일본에서 엄청 활약하고 있잖아요. 아, 동방신기 같은 그룹은 진짜 엄청난 인기예요. 아, 그리고 최근엔 카라(KARA)가 끝내주죠.”
이 대목에서 후쿠야마는 앞으로 몸을 내밀면서 사슴처럼 동그란 눈을 더 크게 떴다. 한눈에 보기에도 그는 카라의 열광적 팬이었다.
“카라, 진짜 귀여워요. 그 엉덩이 춤. 그거 그거 진짜 좋아요(폭소). 정말 ‘나이스 아이디어’라고 생각해요. 전 그거 보고 (한국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어요.”(웃음)
● 후쿠야마와 료마의 공통점이 또 하나 있어요. 여성에게 폭발적 인기가 있다는 거예요….
“(말을 가로막으며) 푸하하. 글쎄요, 전 료마처럼 여성에게 상냥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요. 료마는 참으로 (여성에게) 자상하고 ‘공기’(분위기)를 읽는 게 매우 뛰어났어요. 그리고 일단 여성이 싫어하는 건 하지 않았죠. 전 그점에서는 료마와 타입이 좀 달라요(웃음). 료마는 좀 기질이 강한 여성을 좋아했는데, 전 상냥하고 자상한 여성이 좋아요.”
후쿠야마가 태어나 자란 나가사키는 항구다. 그는 “늘 외국의 여객선, LNG선, 군함을 보고 자랐다”고 한다. 그 배를 보면서 “아, 저 배는 내가 모르는 어떤 나라에서 왔을 테고, 또 내가 모르는 그 나라로 되돌아 가겠구나. 아~, 본 적 없는 나라, 본 적 없는 경치를 나도 봤으면…” 이란 생각을 늘 했다고 한다. 그의 10대 시절 꿈은 “돈 신경 안 쓰고 좋아하는 곳 마음껏 여행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론 10대 때까지 그에겐 수학여행이 유일했다. 그저 먼 바다 건너편 미지의 세계를 꿈꿨을 뿐이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상상력, 호기심, 동경이야말로 오늘날 ‘수퍼스타’로 성장한 밑거름이 됐다. 마치 나가사키의 바다를 보면서 ‘사립 함대’를 꿈꾼 에도 막부 말기의 영웅 ‘료마’처럼 말이다.
● 데뷔 후 21년간 지속적인 인기를 유지하고 히트곡이 매년 끊이지 않는 게 경이롭습니다. 배우, 사진가로서도 활동영역을 넓히고 있는데.
“18세 때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취직(전기회사 영업사원)을 했었어요. 3, 4개월 정도 다녔는데 너무 싫더군요. 음악을 하고 싶은 마음에 도쿄로 갔죠. 1년 여기저기서 일하다 현재의 사무실에 들어갔는데, 실은 제게 제안한 것이 음악이 아니라 영상 쪽이었어요. 그래서 ‘난 음악을 하고 싶습니다’라고 했죠. 그랬더니 ‘곡을 가져오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제게는 곡이 없는 거예요(웃음). ‘아, 난 정말 바보 같고, 마음만 있지 아무것도 가진 게 없구나’란 생각이 들었죠. 그때 깨달은 건데, ‘누군가 내게 어떤 것을 해주길 원한다면 그에 응하자’는 겁니다. 전 지금도 제게 들어오는 제안은 일단 다 충분히 검토합니다.”
● (처음에 출연을 주저했던) 료마전도 그런 차원인가요.
“맞아요.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는 내 주변 모든 분이 ‘안 돼. 안 돼. 안 돼”라고 모두 웃었죠. 안 어울린다고 본 거예요. 솔직히 제 생각도 그랬고요(웃음). 하지만 거기서 거절해버리면 매우 쉬운 일이고 그걸로 끝을 낼 수는 있지요. 하지만, 일단 한번 해보지 않으면 성공도 실패도 태어나지 않는 것 아니겠어요.”
j 칵테일 >> 신문 배달원 출신
가장 아름다운 일본 남성 1위(4월 28일 조사, 그것도 2위와의 격차가 더블 스코어). 연인으로 삼고 싶은 남성 유명인 4년 연속 1위. 21년간 줄곧 일본 음악계의 정상을 지켜 온 후쿠야마를 표현하는 말들이다. 일본 연예계의 거두인 방송인 시마다 신스케는 “일본 여성은 후쿠야마에게 지배당하고 있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여느 ‘꽃미남’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삶과 인생의 고민이 배어 있다. 텁텁하고 꾸밈이 없다. 그게 ‘동성으로서 좋아하는 남자’ 부문 1위에도 올라 있는 이유다. 한마디로 일본의 ‘장동건+정우성+배용준’이다. 가수, 작곡가, 사진가, 드라마·영화 배우…. 만능 엔터테이너 후쿠야마와의 만남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의 입을 통해 ‘인간 료마, 인간 후쿠야마’를 듣고 싶었다. 실제 그는 올 초 1년에 걸친 료마전이 시작된 뒤 “촬영에 전념하겠다”며 모든 인터뷰와 대외 행사를 끊었다. 아사히·요미우리신문 모두 인터뷰에 혈안이 돼 있지만 ‘사절’ 중이다. 그런 그가 j와의 인터뷰에 응한 건 끊임없이 미지의 세계를 열어 간 ‘료마식 호기심’이 작동한 때문인지 모른다. 올해 41세로 아직 싱글인 그는 ‘신문 배달 소년’이기도 했다. 그는 “신문은 미디어를 대표해 독자에게 매일 분석과 해설을 담은 종합 리포트를 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신문사 경영자가 된다면’이란 질문엔 “우선 (중앙일보의 베를리너판처럼) 작게 만들고 싶다”고도 말했었다.
坂本龍馬 사카모토 료마
메이지 유신 기초를 닦은 막부 말기의 최고 검객
료마는 일본 막부(幕府)시대 말기의 무사이자 정객으로, 근대 해군을 창설하고, 메이지 유신 성공에 기여한 일본 근대화의 일등공신이었다. “어제의 내겐 아무 미련이 없다. 어제의 나를 깡그리 버릴 용기가 있는가.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다”라며 자기 혁신을 거듭했던 료마에게서 일본인들은 ‘어제와 다른 새로운 일본’을 찾아보려 하고 있다. 일본의 결단력 있는 리더십 부재를 지적한 폴 케네디에게 공감하는 것일까. 최근 아사히 신문 조사에서 ‘고민을 상담하고 싶은 인물 1위’ 역시 료마였다. 1836년 도사번(土佐藩·현 고치현)에서 태어난 료마의 출신계급은 하급 무사인 고시(鄕士)였으나 원래 부유한 상인 집안이었다. 학교 스승도 포기할 정도로 공부엔 취미가 없었지만 검을 잡으면 눈빛이 달라졌다.
14세 때 검술에 입문, 19세에 에도(江戶)로 나와 최고 검객의 경지에 이른다. 당시 미국의 개항 요구에 굴복하는 막부에 환멸을 느껴 목숨을 걸고 막부 지지파인 도사번을 탈퇴해 낭인(浪士)이 된다. 25세 때 개국파인 막부 가쓰 가이슈를 죽이러 찾아갔다 오히려 감명을 받고 그의 제자가 됐다. 그의 밑에서 항해술을 배운 뒤 1863년 고베(神戶)에서 나중에 최초의 근대적 일본 해군으로 변모하는 해운회사 가이엔타이(海援隊)를 설립한다. 1866년 끈질긴 설득으로 막부 타도 경쟁을 벌이던 조슈(長州)번과 사쓰마(薩摩)번 간의 역사적 ‘삿초(薩長)동맹’을 이뤄냈다. 이듬해에는 에도 막부가 300년 동안 가져온 통치권을 천황에게 돌려주는 ‘다이세이호칸(大政奉還)’을 성사시켜 근대국가로 나아갈 발판을 마련했다. 그는 통일된 하나의 일본을 설계하고 근대화를 실천한 행동가였다. 1867년 11월 메이지 유신을 코앞에 두고 막부 자객의 칼에 맞아 33세의 나이로 불꽃 같은 삶을 마쳤다.
뼈저린 료마의 명언들
일본을 다시 한번 세탁하고 싶다
료마의 명언 중에 가장 유명한 말이다. 외세와 내통하던 에도 막부의 행태에 분개한 그가 누나에게 보낸 편지에서 “삿초(藩長)연합’, 막부 타도, 해상무역을 통한 경제적 개국을 이뤄내겠다”고 다짐하며 한 말이다. 이와 함께 “목표를 세우면 반드시 동시에 실행을 해낼 방법을 생각하고, 어떤 수단을 쓰건 목표를 최종적으로 실현한다”고 했다.
크게 두드려야 큰 답이 나온다
료마가 막부시대 종식에 큰 공을 세운 사이고 다카모리를 만났다. 그는 사이고가 어떤 인물인지 종잡을 수 없어 처음엔 탐색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료마는 당시 “크게 두드리면 큰 답이 나올 것이며, 작게 두들기면 작은 답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응대했다. 상대가 누구든지 간에 눈앞의 사람에 대해 사려 깊게 최선을 다하면 좋은 만남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얘기로 해석됐다.
사물의 열 중 하나, 둘은 타인에게 양보하라
막부 세력의 권력을 천황에게 반납하게 한 ‘다이세이호칸(大政奉還)‘은 료마의 작품이었다. 하지만 그 공은 도사현의 고토 쇼지로에게 거의 돌아갔다. 료마는 “일이라는 건 (혼자서) 전부 해 버리면 안 된다. 8할까지면 족하다. 8할까지가 어려운 것이다. 그 나머지 2할은 남이 할 수 있도록 공을 넘겨야 한다. 그래야 큰일을 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나는 인간의 이념, 사상은 묻지 않는다
료마의 사설 함대에 사사키라는 횡포 심한 부하가 있었다. 술과 싸움을 반복하자 참다 못한 다른 부하들이 “그는 ‘친막부’ 사람”이란 구실을 달아 쫓아내려 했다. 료마는 껄껄 웃으며 “우리에게 ‘친막부’ 사람이 있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도 괜찮다. 배를 잘 조종하는 사람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내 부하는 모두 이런 사람들뿐이다
료마의 함대에 하시모토라는 괴짜 부하가 있었다. 큰 파도로 배가 정박하지 못하자 용감히 닻을 던지고 혼자서 그물을 끌어올려 짐을 옮기던 하시모토를 보면서 료마가 부인과 부하에게 한 말이다. “나를 따르는 모든 자를 믿는다”란 믿음을 끊임없이 줬던 그의 부하들은 메이지 유신 이후 대부분 대신(大臣·장관), 백작, 정치가, 재계 거물로 성장했다.
최훈 기자 [choi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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